마르크 샤갈(1887~1985) 향년 98세
- 몽환적 초현실주의 화가
마르크 샤갈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
작품세계
마르크 샤갈은 20세기를 대표하는 예술가 중 하나로, 그의 미술 작품은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다양한 장르와 다양한 스타일을 아우르는 예술가이며 밝으면서도 몽환적인 초현실주의 그림으로 유명합니다.
샤갈의 다양한 작품을 보면 그가 추구하는 미술 사조가 느껴져야 되는데 작품들을 자세히 살펴보아도 하나로 특정지을 수가 없습니다. 이는 인상파, 입체파, 야수파의 특징들 속에 자기만의 차별화된 화법을 추구하며 초현실주의적 표현을 작품에 담아냈기 때문입니다. 또 그의 작품은 유대인 배경과도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세계 각지에 살면서도 유대인의 규범과 생활 관습을 지키는 유대인을 디아스포라고 하는데 어릴 때 디아스포라의 삶을 살아갔던 샤갈은 유대인의 역사, 전통, 신화를 작품에 담아냈으며 유대인으로써의 정체성은 활동하는 내내 작품의 중심이 됩니다. 표현기법이나 이론에 엃매이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그리고 담아내는 것이 좋은 작품의 가치와 요소가 되어지는 사회적 분위기였기에 유대인으로서 다양한 주제와 새로운 표현은 주목을 받아내기에 충분했습니다.
덕분에 샤갈은 어떤 법칙이나 미술사조에 엃매이지 않고 자신만의 표현기법과 초현실주의적 작품 세계를 만들어 나갈 수 있었습니다. 현실과 동떨어진 환상과 인간의 감정, 그리고 정신 세계를 표현하며 작품으로 치유하며 이상을 추구했습니다.
샤갈은 미술작품 외에도 스테인드글라스, 종교 작품, 삽화, 의상 디자인, 연극무대 디자인, 도자기 등 다양한 미술 양식을 접하고 경험합니다.
어린 시절
마르크 샤갈은 1887년 7월 7일 비텝스크 근교 벨라루스에서 유대계 가정의 아홉 남매 중 첫째로 태어났습니다. 이름은 모이세 세갈이였으나 훗날 마르크 샤갈로 개명합니다. 그의 집은 매우 가난했는데 그의 아버지 카츠키 샤갈은 청어 상인 밑에서 일을 했고 어머니는 집에서 채소를 파는 채소 상인이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중노동을 하면서 열심히 일했지만, 수입은 변변치 않았습니다. 이후 샤갈은 "존경받지 못하는 그의 아버지"를 생선 모티브를 포함하여 표현하였습니다. 동유럽의 유대인 사회는 작고 평화로웠으며 사람들은 유대 교회와 가정집과 상점들 속에서 조용하게 살았습니다. 비텝스크는 전원적인 분위기, 나무로 만든 집, 그리고 가난함과 같은 동유럽 유대인 공동체의 특색을 모두 갖추고 있었는데 이런 어린 시절이 훗날 샤갈의 작품 세계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당시 러시아에 살고 있던 유대인은 공립학교에 입학할 수 없었지만, 어머니 페이가 이타는 샤갈이 유대인 초등학교 헤다르를 마치자 교사에게 뇌물을 주고 그를 공립학교에 진학시켜서 샤갈은 힘든 노동과 동족 중심의 유대인 공동체에서 탈출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가난하고 힘든 환경에 얽매이는 대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바이올린과 성악을 배울 수 있었으며 유대인의 언어인 이디시어가 아닌 러시아어로 말했습니다. 그리고 코즈모폴리턴과 문화적 가치에 관심이 높은 부르주아 사회와 접할 수 있었습니다. 1906년 당시 러시아 제국의 수도이자 예술의 중심지였던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이사를 갔는데 그곳에는 많은 유명한 예술학교들이 있었습니다.
그는 그곳의 명문 예술학교에 등록을 해서 2년을 공부하고 후에 페테르스부르크 왕실학교를 졸업합니다.
1910년 파리로 유학을 떠나 아카데미 쥘리앙에서 공부하면서 피카소와 입체파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가족
샤갈이 23세 되던 해 15세의 벨라 로젠펠트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샤갈은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그녀가 자신의 아내가 될 것이라고 느꼈다고 합니다.
그녀는 어리기도 했고 유복한 상인 집안에서 태어났기에 성공하지 못한 화가와의 결혼은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성공한 뒤 청혼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파리로 떠나 화가로서의 자리를 굳힌 후 1915년 28세가 되어 결혼합니다.
부인 벨라는 뛰어난 성적으로 졸업하고 배우를 하려 했으나 샤갈과 결혼한 후 자신의 꿈은 접고 남편의 예술 활동을 지원하기로 마음먹습니다. 벨라는 미인이기도 했으나 교양과 예술적 통찰력이 뛰어나 샤갈의 작품에 엄청난 영향을 주게 되고 샤갈의 뮤즈가 되었고 둘 사이에서 딸 이다를 얻게 됩니다.
1944년 아내 벨라가 갑작스러운 간염으로 죽고 몇 달간 작품 활동을 멈추게 됩니다. 후에 아픔을 딛고 다시 작품활동을 하는데 1952년 60대의 샤갈은 딸에게 소개받은 유대인 여성 발렌티나 바바 브로드스키와 결혼을 하게 됩니다.
업적
샤갈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까지 작품 활동을 하면서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을 직접 겪은 예술가입니다.
전쟁이란 누구에게나 무섭고 힘든 시간이겠지만 유대인인 샤갈에겐 전쟁으로 인한 도피와 탄압이 더욱 혹독하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그는 이방인으로서의 고달픔과 시련을 작품에 다양한 시도로 녹아내어 개성 있는 작품을 만들어냈고 다른 누구와도 다른 자신만의 아이덴티티를 표현해 내었습니다.
유행하던 미술 사조를 그대로 따르지 않고 개척하여 확실한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낸 샤갈.
그러한 이유로 샤갈의 명성은 높아지고 작품의 가치도 높아지게 되었습니다.
카네기 상과 에라무스 상을 수상하였으며 90이 되던 해 생존 화가 중 유일하게 루브르 박물관에서 개인전을 개최하였습니다.
프랑스 니스시는 그가 86세 때 <샤갈 미술관>을 개관하였습니다.
그림 작품 외에도 뛰어난 판화 작품, 스테인드글라스 작품들을 남겼고 1985년 9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으며 생 폴의 유대인 묘지에 묻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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