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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가 이야기

색채의 마법사 르누아르

by 아트랑 2024. 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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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 1899년,캔버스에 유채 <소장: 클라크 미술관>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Pierre Auguste Renoir)

/1841년 2월 25일 ~ 1919년 12월 3일 (향년 78세)

 

- 색채의 마법사 르느와르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

 

작품세계

 

르누아르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인상주의 화가로 인물중심의 그림을 많이 그렸습니다.

특히 여인들을 아름답게 그려내었고 풍경화도 뛰어났습니다.

인상파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화려한 멋을 보여준다는 평을 받고 있으며 색채의 마술사라고 불렸습니다.

살아 생전 5000여 점의 작품을 그렸는데, 그 중 2000여 점이 여성 인물화일 정도로 여성을 많이 그렸으며 예쁘고 마른 정형화된 아름다움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을 많이 그렸습니다. 

르누아르의 화풍은 두 가지의 타입이 있는데 그림의 선이 없이 보들보들하게 그린 것과 화사함은 유지하되 물감을 덧칠하여 자글자글하게 그린 것이 있습니다.

1876년 발표한 <물랭 드 라 갈레트에서의 무도회>는 르누아루의 초기 명작으로 평가되는데 이 작품 전까지 르누아르는 보통 한 명 또는 두 명 정도의 인물만을 그려왔으나 이 작품이 인기를 끌자 조금 다른 버전으로 다수의 사람들이 있는 그림들을 그렸습니다. 물랭 드 라 갈레트에서의 무도회는 1990년 885억여 원에 팔려 세상에서 가장 비싼 작품 순위 안에 들기도 했습니다.

초기 르누아르의 화풍은 인상주의의 영향을 받았지만  1864년의 <로맹 라코 양의 초상>이나  <그림 그리는 모네>, <라 그르누에르> 등  초기의 작품들은 로코코 시대의 느낌과 모네 류의 인상주의를 오가는 형태를 보입니다. 

1890년대부터는 여성,어린이,꽃 등을 많이 그렸고 작품 활동 후기에서는 오로지 여인의 육체에 한없는 아름다움을 찾고 여성의 나체를  빨간 색조로써 순화된 작품을 남기고 있습니다.

주요 작품으로 〈해수욕장의 풍경〉, 〈대수욕〉, 〈목욕하는 여인들〉, 〈큰길〉 등이 있으며 인물화를 많이 그리다 보니 모네, 시슬레 ,바지유 등 친구들의 모습도 그의 그림으로 남길 수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르누아르는 1841년 2월 25일 프랑스 리모주에서 7명의 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납니다.

르누아르의 아버지는 재단사였고 어머니는 재봉사였는데 가정 형편은 넉넉한 편이 아니었습니다.

4살 때 파리로 이사를 왔는데 가정이 가난해서, 12~13세 때부터 도기 공방에 첨화 직공으로 들어가 일했는데 도기에 그림을 붙이는 기계가 발명되자 직공 일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로 마음먹고 국립 미술학교인 에콜 데 보자르에 입학합니다. 동문으로 모네, 시슬레, 바지유,피사로가 있으며 굳은 우정으로 맺어집니다. 

 

가족

 

9살 연하인 알린느 샤리고 사이에서 1885년, 아들 피에르 출생.(르누아르 45살, 알린느 34살)

1894년, 둘째 아들 장 출생, 61세인 1901년에 막내아들 클로드 출생.

피에르는 훌륭한 배우가 되어 처음에는 연극에, 나중에는 영화에 출연했고  장은 '남부 사람'(1945)으로 아카데미상을 거머쥐었습니다. 장은 초기 프랑스 영화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영화감독이 되었고 장의 영화에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예술에 대한 깊은 이해가 담겨 있습니다.

정식 결혼으로 얻은 아들 이외에도, 결혼하기 한참 전인 1870년에 얻은 딸 잔 트레오가 있는데  잔은 르누아르의 그림 모델이자 애인이었던 리즈 트레오와의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르누아르가 미술계에서 인정받지 못해 가난하게 살던 시절이라 잔을 입양 보낸 후 리즈와도 헤어졌습니다. 잔의 존재는 르누아르 사후 80여 년이 지난 2000년대 들어서야 잔에 관해 쓴 편지가 발견되어 르누아르에게 딸이 있었음이 드러났습니다. 

 

 

인상주의

인상주의는 전통적인 그림 기법과 달리 밝은 빛의 그림을 제시한 미술 사조의 새로운 흐름입니다.

인상주의를 추구한 화가를 인상파 화가라 하는데  르느와르와 그의 친구들인 모네, 바지유, 시슬레, 피사로 같은 인상파 화가들은 자연과 평범한 일상 모습들을 빠른 시간 안에 즉흥적인 붓질로 그리기를 좋아했습니다.

인상파 화가는 빛과 색채에 관한 연구자이기도 한데 태양 광선이 어떻게 풍경 속에서 색채를 변하게 하는지를 관찰하고 연구했기 때문입니다. 물감 튜브가 발명되어 현장에서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된 환경적인 배경이 이 시대 인상주의를 더욱 활발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업적

"고통은 흘러가지만 아름다움은 영원하다."

말년에 류마티스 관절염으로 손으로 붓을 잡기도 어려운 시절 손에 붓을 묶어서 그림을 그리며 그마저도 힘들면 입으로 붓을 물고 그림을 그리며 했던 말입니다.

인상파이지만 40대 이탈리아에서의 여행 후 인상주의에 묶일 필요가 없다는 걸 느끼고 더 찬란한 그림, 더 아름다운 그림을 추구하며 고전적인 화풍으로 바뀌기도 했었지만 그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정신만은 생을 마감하는 그날까지 한결같았습니다.

빨강, 노랑, 파랑, 초록 등의 색을 선명하게 칠하여 색채 화가라 불렸고, 특히 붉은색의 표현에 뛰어나 근대 최대의 색채 화가로 알려져 있는 르누아르. 그가 남긴 작품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많은 인상파 화가들 중 아름다운 그림으로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고 그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미와 예술에 대한 열정은 다작으로 남긴 그의 작품 속에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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