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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가 이야기

내면의 표현가 뭉크

by 아트랑 2024. 3.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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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바르트 뭉크 - 절규(1893)

 

 

 

에드바르트 뭉크(1863년 12월12일~1944년 1월 23일) 향년 80세

 

 

- 내면의 감정과 심리를 예술로 반영한

에드바르트 뭉크에 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

 

 

작품세계

에드바르트 뭉크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활동한 노르웨이 출신의 표현주의 화가이자 판화 작가입니다. 신인상파의 영향을 받아 점묘의 수법으로 삶과, 죽음의 문제에 극적이고 내면적인 그림을 그리다가 표현주의 영향을 받아 자신만의 독특한 예술적 표현을 개발하고 특별하고 개성 있는 작품으로 국제적으로 인정받았습니다. 그는 어릴 적 어머니와 누나의 죽음과 또  다른 가족들의 죽음, 그리고 연속된 사랑의 실패로 인간의 삶과 죽음, 존재함으로써 느끼는 고독, 질투, 불안 등을 표현주의 화풍으로 인물화를 통해 나타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들의 죽음으로 인한 불안과 상처는 신경쇠약, 우울증, 공황장애 등으로 나타나는데 자신의 상처와 고통을 외면하거나 숨기지 않고 예술로 드러내고 풀어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작품에서 보이는 강력한 감정의 표현과 독특한 예술성은 현대미술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국제 미술사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는 노르웨이에서는 국민적인 화가로 그의 초상이 노르웨이 지폐에도 그려져 있습니다.

 

 

어린 시절 

에드바르트 뭉크는 1863년 12월 12일 노르웨이의 로이텐에서 군의관의 5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자신의 일생은 죽음과 함께 있었다'라고 했을 만큼 어린 시절부터 죽음을 목격했습니다. 그가 5살 때 어머니는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나고 14살이 되었을 때 어머니를 대신해 줬던 큰 누나 소피에도 같은 병으로 세상을 떠납니다. 여동생 라우라는 정신병을 앓게 되었고 아버지는 의사임에도 가족들의 병을 고쳐주지 못한 죄책감에 종교에 의존하게 되는데 결국 광신도가 되어 아이들에게 정신적 학대를 주고 뭉크에게 불안을 안겨 줍니다. 결국 뭉크가 26살 때 아버지도 세상을 떠나고 32살 때 남동생도 사망합니다. 뭉크의 생애 전체에 걸쳐 작품 속에 불안의 감정들이 담겨 있는 것은 가족들의 순차적 죽음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이런 우울한 어린 시절을 보낸 뭉크는 자신을 돌봐준 이모를 통해 그림을 접하게 되고 자신의 감정을 그림으로 담아내며 그 시절을 견뎌내었습니다. 18세 때 아버지의 강요로 기술학교를 가게 되지만 결국 그만두고 국립 왕실 미술 학교를 가게 됩니다. 그곳에서 미술에 재능을 보여 프랑스 유학생으로 선발되는데 프랑스 유학시절 접한 후기 인상주의 특히 고흐의 화풍에 큰 영향을 받고 자신의 화풍을 마음을 대변하는 표현주의를 지향하게 됩니다. 처음엔 우중충한 뭉크의 화풍은 많은 혹평을 받았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의 내면을 표현한 그의 작품들은 많은 사람들의 찬사를 받게 되고 후에 노르웨이 왕실보부터 기사 작위까지 받게 됩니다.

 

 

사랑과 여자

뭉크의 첫사랑은 밀리 탈로라는 여자로 후원자 프리즈 탈로의 형수이자 사교계의 유명 인사였습니다. 그녀는 자유분방한 기질을 지녔는데 20살의 뭉크가 감당하기엔 벅찬 상대였습니다. 사랑에 대한 강렬한 경험을 하게 되지만 그녀와 연애를 하면서 끝없는 의심과 질투로 정신적 고통을 받게 됩니다. 뭉크는 그녀에게 크게 상처를 입고 여자에 대한 왜곡된 시각을 갖게 됩니다.

두 번째 사랑은 노르웨이의 작가였던 다크니 유엘이라는 여자였습니다. 뭉크는 그녀를 첫사랑의 상처를 치유해 줄 여인이라 생각하고 사랑했지만 베를린에서 자신과 교류하던 예술가 친구에게 빼앗깁니다. '질투'나 '이별' 등의 그림을 통해 자신에게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을 표현했으나 결국 그 둘이 결혼을 하자 이에 배신감과 분노를 느껴 '마돈나'를 그리게 됩니다.

이 일로 인해 뭉크는 더 이상 여성을 믿지 않게 됩니다.

세 번째 사랑은 상류층 여성인 튤라 라르센이라는 여성입니다. 그가 34살 때 4살 연상인 튤라는 예술 방면에 해박하고 적극적이었으나 뭉크에게 너무 집착하였고 결혼을 원했습니다. 뭉크는 이전 관계의 상처와 결혼에 대해 부정적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결혼을 원치 않았습니다. 뭉크는 툴라를 멀리하였고 툴라는 결혼하지 않으면 자살하겠다고 협박합니다. 뭉크는 그녀를 말리기 위해 왔으나 다툼 끝에 총이 발사되어 뭉크의 왼쪽 중지를 잃게 되고 점점 더 여자를 증오하게 됩니다. 툴라와 결별 후 과도한 음주와 싸움 등을 하게 되고 환각 증세와 불안 증세가 생겨 8개월 동안 병원에서 요양치료를 받습니다. 이후 뭉크는 넓은 땅을 사서 풍경화나 자화상을 그리며 독신으로 살았다고 합니다.

 

 

유명 작품

뭉크는 자기 작품이 자신을 떠나는 것이 싫어 한 점이 팔리면 똑같은 작품을 한 점 더 그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뭉크가 죽고 오슬로시에 자신의 모든 작품을 기증하였는데 뭉크의 거의 대부분의 작품이 기증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가 기증한 작품 수는 유화 1,100여 점, 판화 1,800여 점, 드로잉 및 수채화 4,500여 점, 조각 6점 외에도 스케지북과 다량의 석판이 있습니다. 유명 작품으로는 절규, 사랑의 새벽, 마돈나, 생명의 나무, 태양, 흡혈귀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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