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수아 부셰(François Boucher) /1703년 9월 29일~ 1770년 5월 30일 (향년 62세)
- 프랑스 로코코 미술을 대표하는
프랑수아 부셰에 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
작품세계
로코코는 르네상스 이후의 일반적 미술 흐름인 이탈리아에서 시작해 전해진 것이 아니라 프랑스가 만들어 전 유럽에 전파시킨 미술 양식입니다. 프랑수아 부셰는 프랑스 로코코 미술의 전성기를 대표하는 화가로 18세기 프랑스 예술의 중심에 있습니다. 18세기 초중반 프랑스 문화를 지배한 취향은 '예쁜 것'에 대한 탐닉이라 볼 수 있는데 그 시대 프랑스에서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을 구체화한 것이 부셰의 그림입니다. 부셰는 밝고, 가볍고, 우아하고 세련되었으며 호화스럽고 에로틱한 것을 추구했습니다. 부셰는 그 시대 취향과 유행을 가장 정확하게 반영한 작품으로 궁정과 귀족, 상류층 부르주아뿐 아니라 일반 서민들에게까지 폭넓은 인기를 누렸는데 18세기 유럽이 받아들인 '프랑스적인 것'의 가장 전형적인 이미지가 부셰의 그림입니다.
부셰는 40여 년에 걸친 오랜 활동 기간 동안 왕성한 작품 활동을 했는데 회화 1천 점 드로잉 1만 점 정도를 제작했다고 추산합니다. 루이 15세의 후궁으로 로코코적인 실내장식과 미술 유행을 선도했던 퐁파두르 부인의 후원을 20여 년간 받으며 화가이자, 실내 장식가, 동판화가, 연극 무대 제작자, 미술 컨설턴트 역할을 하며 예술 전반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프랑스의 모든 계층에 궁정 문화를 퍼뜨리고 유럽 전역에 '프랑스풍'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인상을 만듭니다.
생애
프랑수아 부셰는 1703년 9월 29일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니콜라 부셰도 화가였기에 아버지에게 그림을 배우다 17세에 왕립 회화 및 조각 아카데미에 입학하여 거장 화가들의 지도를 받습니다. 1723년 아카데미의 로마상을 수상하여 1727년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납니다. 그는 이탈리아에서 4년간 바로크 작품들과 매너리즘을 공부합니다.
1731년 파리로 돌아온 부셰는 종교와 신화 주제의 그림을 그려 명성을 쌓아갑니다. 1733년 서른살이 되던 해 17살의 마리란 뷔소와 결혼하는데 그녀는 미모로 유명했으며 그가 그린 많은 신화 주제 그림에 등장하는 여신의 모델이었습니다. 1734년 <리날도와 아르미다>라는 그림으로 아카데미 회원이 됩니다. 1735년부터 왕실의 주문으로 궁궐의 벽화 등을 그리기는 했으나 개인 소장가들의 요구에 맞춘 작품 활동을 많이 했습니다. 부셰는 당대의 유행과 취향을 그림에 단순히 반영만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취향을 갖고 그 유행에 따른 로코코인이었습니다. 부셰는 아름다운 것은 다 좋아했고 연극과 여자, 진기한 광물과 동물 표본 및 중국 유물 수집 등에도 많은 지출을 했습니다.
화가로서 부셰의 전성기는 1740년대이며 이 시기의 대표작은 1742년 살롱에 출품한 <목욕중의 다이애나>입니다. 신화를 주제로 한 부셰의 그림은 메시지보다 화면의 감각적 아름다움이 부각되는 특징을 가지는데 인상파를 비롯한 많은 화가들에게 큰 영감을 줍니다.
1744년 루이 15세의 후궁이 된 퐁파두르 부인의 후원을 받아 20여 년간 시각 예술 전반에 걸친 활발한 활동과 영향력을 행사하며 신화화, 목가화, 풍속화 등의 주제로 벽화나 회화뿐 아니라 태피스트리의 밑그림도 많이 그렸습니다. 퐁파르트 부인이 사망한 후에도 그의 명성은 흔들리지 않았으며 1765년 루이 15세의 궁정의 수석 화가로 임명되고, 왕립 미술 아카데미의 교장으로 선출됩니다.
1770년 눈을 감을 때까지 작품 활동을 하며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프랑스 로코로의 완성을 보여준 프랑수아 부셰.
로코코 회화가 보여주는 공상과 향락의 요소는 계몽주의가 추구한 기독교 윤리에서 해방된 세속적 행복의 한 측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계몽주의자들에겐 호화스러운 귀족 문화의 상징으로 여겨질 수 있었습니다. 프랑스 혁명 기간 퐁파두르 부인이 미술품으로 치장한 많은 성이 파괴되었고 그 안에 있던 부셰의 작품들도 소실되었습니다.
주요 작품으로는 <다이애나의 목욕>, <봄>, <주피터와 카리스트>, <비너스의 화장>, <여자 정원사> 등이 있습니다.
로코코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에 퍼져나간 로코코 미술은 프랑스어의 로카유(rocaille)에서 유래되었는데 조개 무늬장식이나 모양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18세기 프랑스 파리의 귀족층을 중심으로 한 장식성이 강한 미술 경향인 로코코는 귀족 사회의 생활을 미화하기 위하여 고안된 장식 양식 혹은 공예품에 대하여 쓰인 말이었으나 후에 이 시대의 프랑스 미술, 나아가서 유럽 미술 전반에 걸친 양식 개념이 되었습니다. 로코코는 바로크의 연장 및 변형이라고 볼 수 있는데 바로크의 유동적 조형요소는 계승하고 바로크가 지녔던 생동감이나 장중한 위압감 등은 로코코에서는 세련미나 화려한 분위기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로코코 양식은 불규칙적이고 우아한 곡선, 화려한 장식, 밝고 가벼운 색조, 섬세함 등의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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