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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가 이야기

바로크 회화의 개척자 카라바조

by 아트랑 2024. 5.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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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바조/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1598~1599)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 ( 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 /

1571년 9월 29일 ~ 1610년 7월 18일(향년38세)

 

 

- 바로크 회화의 서막을 연 카라바조에 관하여 알아 보겠습니다 -

 

작품세계

 

카라바조는 이탈리아의 화가로 초기 바로크 미술의 대표적 화가입니다.

그의 본명은 미켈란젤로 메리시이지만 르네상스 시대의 미켈란젤로와 이름이 같기도 하고 양친 모두가 베르가모 근교의 카라바조 출신이라 카라바조라 불렸습니다.

카라바조는 르네상스 회화 양식에서 바로크 회화 시대를 개척한 거장으로 미술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인물입니다.

 

초기에는 정물과 초상을 치밀한 사실 기법으로 묘사하여 바로크 미술 양식을 확립하였고 어둠과 빛으로 표현하는 테네브리즘(Tenebrism) 기법으로 17세기 회화에 변화의 바람을 일으켰습니다. 그의 탁월한 명암 기법으로 인간의 육체적, 심리적 상태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그의 작품은 바로크 회화에 큰 영향을 줍니다. 카라바조는 다채로운 르네상스 회화들과 달리, 어두컴컴한 배경 속에서 중심이 되는 인물들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어 명암이 강하고 뚜렷하게 대비되는 키아로스쿠로 기법의 개척자였으며 이러한 회화 기법은 루벤스, 렘브란트 등 후대의 바로크 화가들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카라바조는 그 당시에도 유명 인사로 알려져 있었으며 '카라바조주의'라는 말을 붙일 수 있을만큼 유럽 전역에 지속적으로 상당한 영향을 미칩니다.

그의 그림은 언제나 빛과 형상에 대한 근본원칙을 확립하고 있으며 빛과 그림자의 강한 대비를 기술적으로 구사하고 형상을 입체감 있게 묘사함으로써 근대 사실주의의 길을 열었습니다.

 

이토록 미술사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훌륭한 작품을 남겼음에도 그가 오랫동안 묻혀있었던 이유는 매우 감정적이고 성격이 불같아 일상생활에서 문제를 너무나 많이 일으키고 다녔기에 평판이 좋지 못했습니다. 비평가들 사이에서 잊혔다가 그의 천재성이 그의 평판을 떠나서 제대로 재평가 받은 것은 20세기 초가 되고 나서부터였습니다.

그는 초상화, 정물화가 뛰어났고 사실적 종교화를 그렸으며 그의 작품의 영향력은 서양 미술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대목을 차지하고 있음에 틀림없습니다.

 

 

 

삶. 그리고 도덕적 결함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는 1571년 밀라노에서 태어납니다. 1576년 페스트가 밀라노를 덮쳐 고향인 카라바조로 피신했으나 그의 할아버지, 아버지, 삼촌, 남동생이 감염되어 사망합니다. 살아남은 어머니와 4남매는 형편이 어려워지는데 1584년 13세가 된 카라바조는 미술적 재능을 인정받아 시모네 페테르자노의 공방에 들어갑니다. 빨리 성공하여 집안에 도움을 주고 싶어 했으나 안타깝게도 그가 19세 되던 해 어머니도 사망합니다.

 

카라바조는 1600년 경부터 성공의 길로 달리기 시작하는데 그는 밑그림 같은 사전 준비 없이 바로 색을 칠하는 작업으로 그림을 완성하는 '알리 프리마' 기법을 사용하는 화가였습니다. 밑그림 없이 완벽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끊임없는 연습과 노력을 기울여 기술을 연마했다는 것이고 그림에 있어서 천재적이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그의 회화 실력을 점점 더 유명해졌고 로마의 돈과 권력이 있는 이들이 후원자를 자처했습니다. 특히 고위 성직자들이 카라바조를 매우 아꼈는데 그의 인상적인 그림이 당시 약해진 가톨릭 세력의 회복에 도움이 될 것이라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는 성격이 매우 불안정한 탓에 사생활 측면에서는 문제가 많았습니다. 14번의 전과 기록과 7번의 투옥은 그가 얼마나 문제가 많았는지 말해줍니다. 술 버릇도 고약했고 가는 곳마다 물의를 일으키고 폭행을 저질렀습니다. 게다가 호신용이라며 칼과 같은 무기를 가지고 다녔는데 기분이 나빠지면 흉기를 꺼내 휘두르기도 하였습니다. 도덕적 옳고 그름보다는 기분에 따라 행동하여 문제를 일으키고 다녔으나 그의 뛰어난 재능을 아꼈던 추기경과 고위 성직자들은 그가 일을 저지를 때마다 이를 수습하고 사면해 주는 관대한 조치를 내렸습니다.

 

1606년 결국 그는 사소한 시비로 살인을 저지르고 맙니다. 로마에서 그의 사형선고가 내려졌고 그의 목에는 현상금이 걸리게 되었습니다. 카라바조는 주변의 도움으로 간신히 로마를 빠져나갔고 죽을 때까지 도망자의 신세로 살게 되었습니다. 도망자 신세였지만 귀족들의 그림 주문은 쇄도했고 귀족들은 그의 그림을 받기 위해 범죄자인 그를 비호해 줍니다. 그래서 쫓기는 와중에도 작품 활동은 계속됩니다. 그의 작품 활동으로 몰타 기사단의 신임을 얻게 되는데 욱하는 성질 때문에 또 일을 저지르며 몰타 기사단에게도 쫓기는 신세가 됩니다. 1610년 로마 교황 바오로 5세는 그를 사면했으나 카라바조는 나폴리에서 피렌체로 도피하는 도중에 사망합니다.

 

죽음의 원인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발견된 그의 시신은 외부 충격에 의한 사망으로 보이지 않았으며 많은 납성분이 검출되었다고 합니다. 그 당시 유화에 납을 섞어 사용했었는데 납 성분 때문에 그의 성격적 결함이 생겼던 건 아닐까란 추측도 해봅니다.

그의 작품이 말해주듯 그는 훌륭한 예술가임이 틀림없지만 그가 조금만 더 도덕적이고 이성적이었다면 그에게는 더 나은 삶이, 우리에게는 천재화가의 더 많은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는 기회가 있지 않았을까란 생각이 듭니다. 

 

 

주요 작품

 

주요 작품으로는 <도마뱀에 물린 소년 >,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 <그리스도의 매장>, <성모의 죽음>, <성 요한의 참수>, <메두사의 머리>, <의심하는 도마>,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등 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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